로마 바티칸 교황청, 故이태석 신부의 삶 ‘울지마 톤즈’ 극찬

기사입력 2012.12.21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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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석 신부는 우리 곁을 떠났지만 그가 남긴 사랑은 아직까지도 우리의 삶 속에서 따뜻한 빛을 발하고 있다.

지난 12월 11일, 통영시 종합사회복지관의 자원봉사자들은 전국에서 보내온 1,500상자에 이르는 학용품들을 분류하느라 분주했다. 올해로 2회째를 맞은 ‘아프리카 수단에 펜 보내기’ 캠페인 작업을 하고 있었던 것.

   
사제서품식에서 이태석 신부

이 캠페인은 지난 해 복지관에서 이태석 신부의 삶을 기리는 다큐멘터리 영화 ‘울지마 톤즈’를 상영한 것이 계기가 됐다. 다큐멘터리에서는 톤즈의 어린이가 공부를 하기 위해 펜을 달라고 부탁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후 복지관이 펜 보내기 캠페인을 시작한 것이다. 이 때 전국에서 보내온 무려 1,700 박스. 이 학용품들은 자원봉사자들에 의해 종류별로 분류된 후 수단 현지로 보내졌다.

의료활동과 더불어 음악으로도 수단의 상처를 치유하고자 했던 이태석 신부의 영감어린 삶은 뮤지컬로도 만들어졌다. 뮤지컬 울지마 톤즈는 올해 5월부터 현재까지 서울, 청주, 대구, 울산, 등 전국 각지역에서 차례로 공연 중에 있다.

지난 12월 8일과 9일에는 광주문화예술회관애서, 15일과 16일에는 전북대학교 삼성문화회관에서 각각 공연됐다. 관람자들은 공연에 대한 후기를 자신의 개인블로그나 미니홈피에 다음과 같이 남겼다.

“신부님의 이야기라 그런지 공연을 보러 온 사람들 중에는 수녀님들과 신부님들의 모습이 많이 눈에 띄었다. 다른 뮤지컬들과 구성이 조금 달랐고, 보고난 후 ‘힐링’된(마음이 치유된) 느낌이 들었다.” “나처럼 종교가 없는 사람도 부담 없이 볼 수 있어 좋았다. 뮤지컬 중에 ‘희망은 기다리는 것이 아니고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말이 인상 깊었다.”

그의 삶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울지마 톤즈’는 지난 해 2011년 12월 15일, 주교황청대사관(대사 한홍순)의 추천으로 바티칸 교황청에서까지 상영됐다. ‘울지마 톤즈’는 현지 시각 오후 5시 30분, 비오 10세 홀에서 바티칸의 고위 성직자들과 외교사절들이 참석한 가운데 상영됐고, 이후 교황청 국무원장 타르치시오 베르토네는 ‘이태석 신부가 베푼 사랑과 자비의 불길을 우리는 잊지 못할 것”이라 소감을 밝히는 등 바티칸 성직자들로부터 뜨거운 찬사를 받았다. 이후 영화는 교황 베네딕트 16세에게도 전달됐다.

   
한센병 마을 주민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이태석 신부

‘울지마 톤즈’는 교황청 상영 이후 이탈리아의 종교 케이블 방송 TV2000에서도 방영됐다. 또한, 이태석 신부가 소속되었던 살레지오 수도회 본부는 ‘울지마 톤즈’를 영어, 불어, 스페인어, 독일어 등으로도 더빙하여 수도회 소속 각국 수도원에 배포해 교육자료로 사용 중에 있다.

   
학교 건물을 짓기 전 야외에서 아이들을 위해 수업을 하고 있는 이태석 신부

한편, 우리 외교통상부는 “이태석 신부의 삶은 도움을 받는 나라에서 도움을 주는 나라로 발전한 우리나라의 국제적 위상과 이미지에도 기여했다”며, 이태석 신부의 봉사정신을 기리기 위해 2011년 8월 “이태석상”을 제정, 수여하기로 결정했다.

이태석상은 아프리카에서 귀감이 되는 활동을 통해 국가 이미지 제고에 기여한 봉사자에게 수여하며, 제1회 수상자로 마다가스카르에서 의료봉사 활동 중인 이재훈씨가 선정됐다. 2012년 이태석상의 제2회 수상자로는 말라위에서 의료봉사 활동을 해오고 있는 백영심 선교사가 선정된 바 있다.


다시 보는 ‘울지마 톤즈’ 속 이태석 신부

다큐멘터리 영화 ‘울지마 톤즈’의 첫 장면은 트럼펫을 부는 이태석 신부의 모습이다. 연주하는 곡은 ‘그 때 그 사람.’ 곧 화면이 바뀌며 영화의 시작을 알리는 짧은 메시지가 뜬다. “이 영화는 인간이 인간에게 꽃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보여준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이태석 신부는 10남매 중 아홉번째로 태어났다. 그는 아홉살 때 아버지를 잃었고, 그의 어머니는 바느질을 해서 홀로 10남매를 키웠다. 그는 가난 속에서도 열심히 공부해 의과대학에 진학했고 졸업했다. 그런 그는 가족과 어머니의 희망이었다. 하지만 그는 의사가 되지 않고 사제가 되기로 결심했고, 사제가 된 후에는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곳으로 떠났다.

   
의사가 되기를 바랐던 어머니의 마음과 달리 그는 사제가 되기로 결심한다.


이태석 신부는 신학생 시절 아프리카에 간 적이 있었는데, 그가 간 곳은 다름아닌 내전이 벌어지고 있던 수단이었다. 1983년에 시작된 내전으로 수단은 남북으로 갈려있었고 이태석 신부가 찾아간 곳은 남수단에서도 피해가 가장 심했던 곳이었다. 그는 그곳에서 내전으로 상처입고 병든 사람들,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며 사제 서품을 받은 후 이곳에 돌아오겠노라고 결심했다.

2003년, 이 때는 건강한 모습이던 이태석 신부는 당시 수단의 모습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정말 세상에 이런 곳도 있구나, 하는 느낌이었어요. 제가 생각했던,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많은 것이 부족해도 뭔가 할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느낌 때문에 여기 와야겠다고 결정했어요.”

   
수단 사람들의 가난한 삶

신부가 된 후 톤즈로 돌아와서 그는 의료활동을 비롯해 그가 사람들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시작한다. 하루에 300명 이상씩 환자를 돌보고, 병원을 직접 지었다. 병원 건물을 위해 직접 강가에서 모래를 퍼와 시멘트와 섞어 벽돌을 만들었다. 병원에 앉아서 진료만 한 것이 아니라 차를 몰고 이동 진료를 나가기도 했다. 한센병 환자들을 돌보고, 결핵이 있는 사람은 병원으로 데려와 입원시켰다.

   
병원을 짓기 시작하는 이태석 신부와 마을 사람들

영화는 이태석 신부가 톤즈에서 의료활동 하던 당시의 모습을 담은 영상과, 그가 떠난 후 텅빈 병원과 그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함께 보여준다. 2007년에 톤즈를 방문했던 한 관계자는 그가 현지인으로부터 들은 이태석 신부에 관한 이야기를 다음과 같이 전한다.

   
이태석신부가 수단에 세운 병원

“그곳은 나환자 마을이기 때문에 외부에서의 방문이 거의 없는 곳이다. 그래서 이태석 신부님이 그곳을 (진료차) 방문할 때면 사람들이 무척 좋아했다. 그들은 신부님에게 자신들의 일상이야기를 했고, 신부님은 그 이야기를 모두 들어주셨다. 그 중 나이가 많은 현지인 한 사람은 이태석 신부님을 이렇게 표현했다. ‘성경책에서 읽었던 하느님과 같은 분이다. 유일하게 우리에게 안식을 주러 찾아오는 분이다.’ 나는 그 말이 굉장히 와 닿았다.”‘

울지마 톤즈를 본 이들이 꼽는 명대사 중에 이런 것이 있다. “세상에는 꿈만 꾸는 사람과 꿈을 현실로 만드는 사람이 있다.” 이태석 신부의 삶이 우리에게 깊은 영감과 감동을 주는 것은 그가 단지 ‘가난한 자들에게 주는 삶’을 살았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는 자신의 꿈을 현실로 만든 사람이다. 영화는 이태석 신부가 톤즈에서 건강하게 활동하던 한 때를 보여주며 -카메라를 보며 장난스럽게 ‘브이’를 하는 모습- 다음과 같은 내레이션을 들려준다.

“가진 것이 그 사람의 인생을 말해주는 것은 아니다. 지구 반대편, 두 평 남짓한 공간에서도 꿈을 이룬 남자는 충분히 행복해 보인다.”

   
'Don't Cry Tonj' 영화의 마지막 장면
Photos by 'Don't Cry Tonj'

[문화부 차장대우 이영주 기자 yjlee@worldy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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